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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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되기, 그 긁을 수 없는 가려움

한국인 되기 긁을  없는 가려움

우리는 언제 한국인이 되는 걸까?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대부분 흐릿하지만 가지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다바로 2002한일월드컵이다강렬했던 ‘4 신화 분위기는사실  기억나지 않고대신 다만 아주 사적인 사건이 기억에 남아있다.

 

2002월드컵에서 한국의  상대는 폴란드로 기억한다폴란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친구들에게 담임선생님이 함께 승부를 예측해보자고 말씀을하셨다 기억이 확실하다면모든  아이들이 한국이 이긴다고     명만 폴란드가 이긴다고 했는데   명이 나였다이제  초등학생이  아이가   알고 떠든 것은 아니었다그저 당시에는 막연하게 한국보다 유럽이  잘하니까 폴란드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같다.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사건이 내게 많은 후회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후회는 잘못된 예측 때문은 아니었다 예측에 대해서 후회한 적은 없다후회하는 것은 학교에서 있었던  어리석은 일을 집에 가서 부모님께 신이 나서 떠들었다는 사실이다집에서 입을 다물었다면 폴란드가 이길 것이라는 어떤  초등학생의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예측은 조용히 넘어갔겠지만, 불행하게도  초등학생은 집에서 입을 쉬지 않았다 말을 직후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는데 비난은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이후까지 이어졌다당시 정확하게 들은 말들은 생각나지는 않지만 당시느꼈던 감정은 분명하게 아직도 살아있다 사건은  이후부터 공식적인’  의견은 무조건 나는 한국인이다였다.

 

이후 한국인한민족에 대한 생각이 본격적으로 자라났던 것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부터 였다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이야기를 좋아한 것이지만중고등학교 때의 나는 역사를 많이 좋아했고교과서가 묘사하는 한민족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 혹은 민족의식은 나의 열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식적인 교과과정을 벗어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역사에 대한 온갖 우회로와 숨겨진 이야기들야사들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듣고 알게 되면서민족에 대한 생각이 전면적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이다대개 오프  레코드 온갖 이야기들은 교과과정으로 다져진 공식적인 역사관을 흔들었다아마  시기부터 철학과 공식 역사들의 배경그리고 다른 이야기들에 열광했던  같다다만  열광은 어디까지나 나의 사적인 방구석을 벗어나지는 않았다혹은 못했다(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같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만 있다가 갑작스럽게 슬로베니아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처음으로 한국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진리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정작 밖으로 나오자 무언가를    있기는 커녕 움츠러들었고 나의 시야는  좁아졌다 모든 지식들은 시험대에 올랐다.

 

 지식들은 사실 정체성 혹은 “나는 누구인가 대한 고민과 연결되어 있었다 질문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가장  관심사였다여러 책들과 온갖 수업들그리고 친구들과 멘토들을 만나면서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모든 것들이 착각으로 판명나는 데는 10개월도  걸렸다.

 

이러한 고민이 한인 디아스포라나 재외동포들이 갖는 고민과는  결이 다를 수도 있다하지만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매우 유사하다고 자신 있게말할   없고엉거주춤 서서 말할 수는 있을  같다.

 

임마누엘 칸트는 영구평화론 대해 말하면서 세계 시민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지구촌’ 시대라는 말을 듣고 자란 오늘날의 세계 시민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지만사실  실상은 조금 복잡하다 세계 시민의 전제 조건이 바로 세계 시민 이전에 이미 어느 나라의 시민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제에서부터 상황은 복잡하다당장 튀어나오는 질문은그렇다면 나라가 없는 사람들은 세계 시민이   없다는 것인가에서 시작한다.

 

특정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도 문제가 된다특정 국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의 경우세계 시민을 선택할  없기 때문이다이미 특정 나라의시민이면 사람은 이미 세계 시민이며 따라서 세계 시민으로서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칸트의 논리이다이러한 맥락에서 칸트가 제시한 것은 우리의 확고한 정체성이 아니라 반대인 분열이라고 말해야   같다.

 

현대에서 개인이 어떤 나라의 국적을 본인의 능력으로 가질 수도 있지만 개인들 조차도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나라의 국적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다 세계 시민이 보여주는 것은특정 국적을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세계시민이라는 이중구속에 갇힌개인들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보다 근본적으로  수밖에 없다. “호명을 거부하면서 호명되기를 원하는 모순과  갈등은 결국 민족은 없다라는 것의 증거인걸까?” 혹은 조금  개인의 문제로 좁힌다면 나는 없는 존재일까?” 등등.

 

 질문들의 가장 쉽고 유혹적인 답은 너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그것이 바로 너이며 그것이 민족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이러한 답은 그럴듯하지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바로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에 달렸다는 결론이다따라서  답에서 끝내면 안되고 여기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나아간다는 의미는 그러한 고민들로부터 무언가가 생산되고 창조되어야만 함을 뜻한다.

 

자크 라캉의 언어로 빌려 말한다면, ‘새로운 주인 기표 탄생이라고 말할  있다 창조되는 것은 어떤 이름으로이는 새로운 명명 혹은 호명이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그리고  호명은 앞서 던졌던 근본적인 질문들로 호명을 받아들이는 것과  호명을 거부하는 분열로 우리를 끌고 간다여기에서  다른 유혹이 나타난다그럼 모든 분열된 생각들은 옳으니아주 넓은 눈과 마음으로  모든 생각들을 관용하자는 것이  다음 유혹이다.

 

슬로베니아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의 말을 빌리자면관용이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인 이데올로기 없는 이데올로기 전형이다관용은 겉으로보기에 변화를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떠한 변화도 거부하는 가장 반동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쉽게 말해서 그래너는 그렇게생각해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할 테니 생각의 자유를 막지마라고 표현할  있다.

 

다시 글의  질문으로 돌아가자우리는 언제 한국인이 되는 걸까세계 시민은 사실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가능해진 개념이다시장과 시장이 연결되고 상품들의 원활한 이동이 세계 시민을 가능하게 만들었고역설적이지만 동시에 민족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민주화 또한 팽창하는 자본주의라는 배경으로 이루어졌다그리고  과정 속에서 한국이 정의되었고 민족이 발명되었다민족은 없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뜻하지 않게 그러나 필연적으로 생산되고 그것에 대해 분열증적으로 반응하면서 수용된다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은 존재하지 않지만존재하지 않음으로 존재하는 유령이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민족은 과거에 손상되지 않은 원형의 발현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발명되는 것으로그것은 오래된 미래로서 차후 합리화된다이것이 의미하는 바는보편적이고 모든 의미를 보장할 의미 체계란 처음부터 없었음을 뜻한다구체적으로 말하면한국 혹은 한국인이라는 의미에대한 물음 호명에 대한 분열과  분열의 참조가 오늘날의 한국과 한국인을 만들었다고 표현할  있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 유튜버인 궤도 유령을 겁낼 필요가 없다면서혹시라도 유령을 만나게 되면 두려워하지 말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을 하셨죠?”

 

 농담을 민족이라는 유령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시킬  있을 것이다. “당신의 실체는 어디 있죠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가요?”라는 질문도 효과적일  있지만여기서 강조할 것은 우리의 조상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지평좌표계 가상의 참조점이라는 사실이다진짜 유령은  참조점을지칭한다.

 

한국인 되기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지만 버릴 수도 없는가려워도 긁을  없는 가려움 혹은 긁어도 해소되지 않는 가려움인 셈이다그러나여기서  가지 반전을 찾을  있다그것은 바로 한국인이라는 분열증적인 반응이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농담을 다시   던지면슬로베니아 사람에게 너는 한국인이야?”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질문을 받은  슬로베니아 사람은 고민도 하지 않고무슨 소리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정신나간 소리로 치부할 가능성이 크다그런데 이들에게 너는 슬로베니아인이야?”라고 물었을   질문은전혀 다른 무게를 갖게 된다.

 

당신은 한국인인가요?”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이다오직 한국인이라는 질문에 반응하는 이들에게만 유효한 질문으로이는 정확히 사랑의 고백과 동일한 메커니즘을 갖는다. “오빠 사랑해?”라는 질문을 생각해보면 쉽다.

 

 질문의 배후에 있는 메시지는 대체  사람은  때문에  좋아하는 거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한테는 나를 사랑할 만한 무언가가 없는데 사람은 대체 나로부터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라는 메시지이다.

 

그것은 오로지 나를 사랑하는 당사자에게만 보이고  사람만   있는 것으로그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점에서 유령과 다를  없다한국은 이렇게 발명되고 있고 한국인 또한 그렇게 발견된다.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고당장  삶만 해도 새는 바가지라서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다만  한국인이라는 증상을 즐기자고 말하고 싶다한국인인 것을 거부하든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든한국이라는 유령은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을것이기 때문이다.

 

운명이든 선택이든 갈등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일지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나는  하려고 하는지 혹은  하고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다그것이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는 누구도 예상할  없다다만 확신할  있는 것은 하나 있는데그렇게 생산된 것은 우리의 모든 예상을 벗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한국은 그렇게 발명되었고 발명될 것이다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질문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나는 무엇을  것인가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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