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이야기로 잇는 마음과 민족, K-동화구연과 Te Aratai College의 아름다운 동행
- 박춘태
- 20
- 08-02
뉴질랜드지회 박춘태 기자
“아주 오래전, 깊은 산 속에 사는 작은 부엉이가 있었다…” 이야기의 첫 문장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언어의 장벽도, 세대의 간극도, 국적의 경계도 그 앞에서는 잠시 멈춘다.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따뜻한 다리다. 그리고 이 다리 위에서 사람과 민족,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 있다.
바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Te Aratai College다. 이 학교는 뉴질랜드가 지닌 다문화적 정체성을 그대로 품고 있다. Te Aratai College의 학생들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마오리, 파시피카, 아시아, 유럽계, 중동에서 온 난민 출신까지, 이곳은 단지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문화가 교차하고 공존하는 생생한 교육 현장이다. 이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은 뉴질랜드 사회가 지향하는 포용과 다양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Te Aratai College는 ‘관계 중심의 교육’을 학교 철학으로 삼고 있다. 각 학생이 한 명의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고, 서로 간의 이해와 소통 속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환경. 그 안에는 ‘나’와 ‘너’의 구분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교육적 비전이 자리하고 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정서적 돌봄과 사회적 유대감을 기르는 공간으로서의 학교. 그 모습은 다문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철학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K-동화구연이다.
한국의 구연동화는 목소리와 표정, 몸짓, 감정이 어우러진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전달 방식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공감과 상상을 자극한다. 아이들은 동화 속 인물의 감정을 따라 울고 웃으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말하고 듣는 힘을 함께 키워간다. 말수가 적던 아이도 어느새 당당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이 된다. 이 작은 변화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타문화에 대한 공감 능력을 높이며, 나아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K-동화구연이 가진 힘은 뉴질랜드처럼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모인 다문화 사회에서 더욱 빛난다. 다름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공감의 언어로 동화를 활용하는 것. 이는 단지 ‘한국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넘어, 세계 속 아이들의 마음을 잇는 문화적 소통의 방식이자, 교육의 실천이기도 하다. Te Aratai College에서는 이런 이야기 기반 활동이 교과 수업, 독서 프로그램, 연극 동아리, 지역 커뮤니티 연계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겪은 이민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또 다른 아이는 옛 조상들의 전설을 재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한다. 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책 속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다리’를 놓는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이 경험은 뉴질랜드의 다문화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정체성과 다양성이 혼재된 이 땅에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학생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은 이야기 교육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Te Aratai College와 K-동화구연의 만남은 단순한 협업이 아니다. 이는 언어와 문화를 넘는 감동의 교육이고, 세계를 향한 열린 교육의 실천이다. 작은 동화 한 편이 아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힘을 길러주는 이 활동은, 우리가 바라는 더 따뜻하고 연결된 미래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가 들려주는 동화 한 줄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이야기가 언젠가 피어나 한 아이의 삶을 바꾸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엉이처럼 조용히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담겨 있다. “동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창이고, 학교는 그 이야기가 피어나는 뜨거운 울타리다. 관계와 감동으로 빚어진 미래, 그곳에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