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자전거 도로, 갈등을 넘어 공존의 길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와 한국 도시의 교통 정책을 비교하며
- 박춘태
- 33
- 08-04
뉴질랜드 남섬의 중심 도시, 크라이스트처치.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파크 테라스(Park Terrace)"에는 두 개의 차선을 줄이고 조성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시민의 안전과 친환경 교통을 위한 이 도로는, 그러나 설치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갈등의 중심에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필 모저(Phil Mauger)"는 이 도로가 교통 혼잡을 악화시키고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며, 자신의 사비까지 들여 철거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자전거 이용자들과 시민들은 공공 회의장에 모여 자전거 도로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외쳤다. 그 열띤 토론 끝에 시의회는 2023년 8월, 해당 자전거 도로를 5년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갈등은 단순한 교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철학의 충돌이었다.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현실적인 교통 수요와 효율성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갈등은 존재했다. 서울만 하더라도 한강변이나 도심 곳곳에 조성된 자전거 도로는 늘 논쟁의 대상이었다. 특히 차량 중심의 사고방식이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자전거는 여전히 ‘레저용’ 혹은 ‘위험한 교통수단’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천천히 바람이 바뀌고 있다. 서울시는 자전거를 대중교통과 연계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인식하며 정책을 전환했다. ‘따릉이’와 같은 공공자전거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자전거는 출퇴근용 수단으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고, 청계천, 양재천, 한강 자전거 도로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많다. 일부 자전거 도로는 도로와 인도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아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간 충돌 위험이 높고,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도 부족하다. 또 공사나 재개발이 진행되면 자전거 도로는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사례는 흥미롭다. 자전거 도로의 존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결국 4,000건이 넘는 시민 의견서 제출로 이어졌고, 시의회에서는 변호사의 격정적인 발언에 일부 시의원이 퇴장하는 등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전체가 ‘공공의 문제’를 시민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서울시나 각 지자체에서 공청회나 설문을 통해 시민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확대되고 있지만, 그 참여는 아직까지 제한적이다. 또,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정보 공유는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시장조차 개인 돈을 들여가며 입장을 고수하고, 시민들은 자전거 헬멧을 들고 시의회 회의장으로 향한다. 이런 모습은 '정치'가 시민과 얼마나 가까워야 하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환경 보호, 기후 위기 대응, 교통 혼잡 해소. 자전거 도로 하나에 얽힌 담론은 이처럼 무겁고 거대하다. 하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더 안전한 길을 바라고, 누군가는 더 빠른 길을 요구한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생계수단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크라이스트처치의 갈등을 통해 우리는 ‘공존’이라는 해답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양보와 이해, 그리고 미래를 향한 긴 호흡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전거 도로가 단순히 자전거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소식이 우리의 도시에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이 자전거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로를 만들고 철거하는 것을 넘어, 그 길 위를 함께 걷고 달릴 ‘사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앉혀 놓고 차분히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길이 단순한 콘크리트의 선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과 배려의 흔적이 되기를 바란다.
뉴질랜드지회 박춘태 기자
크라이스트처치 시장 "필 모저(Phil Mauger)"는 이 도로가 교통 혼잡을 악화시키고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며, 자신의 사비까지 들여 철거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자전거 이용자들과 시민들은 공공 회의장에 모여 자전거 도로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외쳤다. 그 열띤 토론 끝에 시의회는 2023년 8월, 해당 자전거 도로를 5년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갈등은 단순한 교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철학의 충돌이었다.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현실적인 교통 수요와 효율성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갈등은 존재했다. 서울만 하더라도 한강변이나 도심 곳곳에 조성된 자전거 도로는 늘 논쟁의 대상이었다. 특히 차량 중심의 사고방식이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자전거는 여전히 ‘레저용’ 혹은 ‘위험한 교통수단’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천천히 바람이 바뀌고 있다. 서울시는 자전거를 대중교통과 연계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인식하며 정책을 전환했다. ‘따릉이’와 같은 공공자전거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자전거는 출퇴근용 수단으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고, 청계천, 양재천, 한강 자전거 도로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많다. 일부 자전거 도로는 도로와 인도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아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간 충돌 위험이 높고,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도 부족하다. 또 공사나 재개발이 진행되면 자전거 도로는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사례는 흥미롭다. 자전거 도로의 존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결국 4,000건이 넘는 시민 의견서 제출로 이어졌고, 시의회에서는 변호사의 격정적인 발언에 일부 시의원이 퇴장하는 등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전체가 ‘공공의 문제’를 시민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서울시나 각 지자체에서 공청회나 설문을 통해 시민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확대되고 있지만, 그 참여는 아직까지 제한적이다. 또,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정보 공유는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시장조차 개인 돈을 들여가며 입장을 고수하고, 시민들은 자전거 헬멧을 들고 시의회 회의장으로 향한다. 이런 모습은 '정치'가 시민과 얼마나 가까워야 하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환경 보호, 기후 위기 대응, 교통 혼잡 해소. 자전거 도로 하나에 얽힌 담론은 이처럼 무겁고 거대하다. 하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더 안전한 길을 바라고, 누군가는 더 빠른 길을 요구한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생계수단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크라이스트처치의 갈등을 통해 우리는 ‘공존’이라는 해답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양보와 이해, 그리고 미래를 향한 긴 호흡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전거 도로가 단순히 자전거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소식이 우리의 도시에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이 자전거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로를 만들고 철거하는 것을 넘어, 그 길 위를 함께 걷고 달릴 ‘사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앉혀 놓고 차분히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길이 단순한 콘크리트의 선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과 배려의 흔적이 되기를 바란다.
뉴질랜드지회 박춘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