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유전자 기술, 농업의 미래와 사회적 신뢰. 뉴질랜드와 한국의 선택이 던지는 질문
- 박춘태
- 18
- 08-08
뉴질랜드지회 박춘태 기자
최근 뉴질랜드에서 ‘유전자 기술 법안(Gene Technology Bill)’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법안은 유전자 변형과 유전자 편집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지만, 의회의 특별위원회가 보고서 발표를 두 차례나 연기하면서 그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정부 연립 파트너 간의 의견 불일치, 농가와 소비자 단체의 반발, 그리고 장기적인 농업·무역 영향에 대한 우려가 얽히며,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와 방향을 묻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이 논의가 특별히 민감한 이유는, 이 나라가 오랜 기간 ‘청정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농축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클린 앤 그린’이라는 브랜드는 뉴질랜드의 식품과 관광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원천이었다. 그러나 유전자 변형 작물(GM crops)이나 가축이 상업적으로 도입된다면, 이 이미지가 손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럽과 일부 아시아 국가처럼 GMO(유전자 변형 생물)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유지하는 수출 시장에서는 외면을 받을 위험이 크다.
농민들의 목소리도 엇갈린다. 일부는 기후변화와 병해충,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전자 기술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농민들은 “지금 당장은 생산량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토양 건강이 악화되고 병충해 내성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올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특히 유기농 단체인 ‘Organics Aotearoa New Zealand’는 이번 논의를 ‘우리 농업이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를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 상황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한국 역시 GMO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GMO가 식품 원재료 형태(콩, 옥수수 등)로 수입되어 가공식품에 사용되고, 상업적 재배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표기 의무를 통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지만, 가공식품의 경우 원재료 단계에서 변형 여부를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결국 ‘정보 제공’이라는 명목은 있지만, 실질적인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셈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유전자 변형 여부보다 ‘안정적인 공급’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가뭄이나 국제 곡물가 폭등 같은 상황에서는 GMO 여부보다 가격과 물량 확보가 정책의 핵심이 된다. 반면 뉴질랜드는 식량 수출국으로서, 자국민 건강 문제뿐 아니라 해외 소비자의 신뢰와 무역 파트너의 기준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농업 구조의 차이를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관점과 우선순위를 크게 다르게 만든다.
뉴질랜드에서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이런 첨예한 이해관계의 문제를 사회 전체가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의회 위원회는 수개월에 걸쳐 농민, 기업, 시민단체, 과학자의 의견을 청취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더라도 시간을 더 들여 논의하려 한다. 기사 속에서도 위원장은 “우리는 서두르기보다 모든 우려를 꼼꼼히 반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배우고 싶은 태도다. 한국에서는 이런 논의가 시작되면, 정치권이 ‘찬성 아니면 반대’로 신속히 결론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정보 공유와 사회적 합의 없이 결정이 내려지고, 그 결과 정책은 바뀌더라도 불신은 그대로 남는다.
유전자 기술은 과학과 농업의 영역이지만, 그 뿌리는 결국 ‘신뢰’에 있다.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는가, 농민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가, 정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가. 기술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도입하거나 거부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어떻게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느냐다.
뉴질랜드의 GMO 논쟁은 단순히 법안을 통과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떤 농업 국가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청정 이미지를 지키며 고부가가치 시장을 지향할 것인지, 아니면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존중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국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식량 안보, 건강, 무역, 그리고 소비자 신뢰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을 것인지. 무엇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줄 것이다. 뉴질랜드가 시간을 들여 토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한 발’은 종종 느리고 조심스러운 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걸음이 모여야만,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길이 열린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유전자 기술 법안(Gene Technology Bill)’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법안은 유전자 변형과 유전자 편집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지만, 의회의 특별위원회가 보고서 발표를 두 차례나 연기하면서 그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정부 연립 파트너 간의 의견 불일치, 농가와 소비자 단체의 반발, 그리고 장기적인 농업·무역 영향에 대한 우려가 얽히며,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와 방향을 묻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이 논의가 특별히 민감한 이유는, 이 나라가 오랜 기간 ‘청정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농축산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클린 앤 그린’이라는 브랜드는 뉴질랜드의 식품과 관광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원천이었다. 그러나 유전자 변형 작물(GM crops)이나 가축이 상업적으로 도입된다면, 이 이미지가 손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럽과 일부 아시아 국가처럼 GMO(유전자 변형 생물)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유지하는 수출 시장에서는 외면을 받을 위험이 크다.
농민들의 목소리도 엇갈린다. 일부는 기후변화와 병해충,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전자 기술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농민들은 “지금 당장은 생산량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토양 건강이 악화되고 병충해 내성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올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특히 유기농 단체인 ‘Organics Aotearoa New Zealand’는 이번 논의를 ‘우리 농업이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를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 상황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한국 역시 GMO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GMO가 식품 원재료 형태(콩, 옥수수 등)로 수입되어 가공식품에 사용되고, 상업적 재배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표기 의무를 통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지만, 가공식품의 경우 원재료 단계에서 변형 여부를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결국 ‘정보 제공’이라는 명목은 있지만, 실질적인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셈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유전자 변형 여부보다 ‘안정적인 공급’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가뭄이나 국제 곡물가 폭등 같은 상황에서는 GMO 여부보다 가격과 물량 확보가 정책의 핵심이 된다. 반면 뉴질랜드는 식량 수출국으로서, 자국민 건강 문제뿐 아니라 해외 소비자의 신뢰와 무역 파트너의 기준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농업 구조의 차이를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관점과 우선순위를 크게 다르게 만든다.
뉴질랜드에서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이런 첨예한 이해관계의 문제를 사회 전체가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의회 위원회는 수개월에 걸쳐 농민, 기업, 시민단체, 과학자의 의견을 청취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더라도 시간을 더 들여 논의하려 한다. 기사 속에서도 위원장은 “우리는 서두르기보다 모든 우려를 꼼꼼히 반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배우고 싶은 태도다. 한국에서는 이런 논의가 시작되면, 정치권이 ‘찬성 아니면 반대’로 신속히 결론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정보 공유와 사회적 합의 없이 결정이 내려지고, 그 결과 정책은 바뀌더라도 불신은 그대로 남는다.
유전자 기술은 과학과 농업의 영역이지만, 그 뿌리는 결국 ‘신뢰’에 있다.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는가, 농민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가, 정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가. 기술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도입하거나 거부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어떻게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느냐다.
뉴질랜드의 GMO 논쟁은 단순히 법안을 통과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떤 농업 국가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청정 이미지를 지키며 고부가가치 시장을 지향할 것인지, 아니면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존중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국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식량 안보, 건강, 무역, 그리고 소비자 신뢰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을 것인지. 무엇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줄 것이다. 뉴질랜드가 시간을 들여 토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한 발’은 종종 느리고 조심스러운 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걸음이 모여야만,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