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중유럽의 YB, 무대의 존재론
- 허의진
- 26
- 08-24


윤도현밴드(YB)가 8월 23일부터 크로아티아 투어를 시작한다. 크로아티아의 메탈 밴드인 젤루식과 함께 하는데, 8월 23일 크로아티아 바라주딘에서의 ‘슈판치르페스트’ 시작으로 리예카(25일), 자그레브(27일), 발포보(31일) 등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윤도현밴드가 중유럽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반가웠다. 자그레브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2-3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이웃 도시이다. 개인적으로 이 도시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축구이고, 다른 하나는 공항버스 타는 곳을 찾지못해서 뜨거운 여름 자그레브의 길거리를 꽤나 무거운 캐리어와 함께 수 십분을 방황한 기억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들은 두 가지였다. “그 나라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 질문에 곧바로 이어서 “그 나라 잘 살아?” 슬로베니아에 대해서는 아직도 초보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었고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을 말해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이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내게 떠오른 질문은 ‘한국에서 유럽이란 무엇인가?’였다. 사람들의 반응에서 불만을 느꼈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들로부터 어떤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아마도 주변부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YB의 중유럽 투어는,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밴드답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대중음악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팬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국의 대중음악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계기를 줬던 것은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다. 중학교 때, 그냥 새벽에 TV를 보다가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만나게 됐는데, 착각일 수도 있지만 처음 들었던 노래가 <나는 나비>였다. 여담이지만 <나는 나비>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전율도 대단했다. 그런데 사실 사춘기 시절 ‘중2병’의 시작을 알렸던 노래는 “난 이제 떠나갈래!”를 외치던 <오늘은>이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노래에 대한 개인의 취향을 알아가게 되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보던 시절의 아티스트들을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YB를 포함해서 김장훈, 이문세, 신해철, 거북이,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등. 이후의 내 음악 취향은 ‘홍대병’으로 갔다. YB가 알려준 밴드 음악의 매력은 인디밴드들로 향했다. 당시 유명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인기를 얻고 활동을 하고 있는 밴드들을 볼 때면 이상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점차 욕심이 커졌다. 유명해지기 전 아티스트들의 시작점을 보고 싶은, 기원을 보고 싶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다.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천재적 능력을 먼저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서부터, 그들이 어쩌다가 음악을 좋아하게 됐고 여기까지 흘러왔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거기에는 예상하지 못하게 흘러간 내 삶에 대한 위로를 찾고 싶었고, 또 아직 이해하지 못한 연대, ‘함께감’이라는 말을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물론 솔직한 마음은 그 과정에서 내 자리를 찾고 싶었고 주변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이 컸다.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패배감의 우울한 단조가 짧은 내 인생의 테마곡이었다. 시작점을 보고 싶었던 것도 이 패배감을 달래기 위한 위로의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지극히 편견일 수도 있지만, 내가 자라온 한국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패배자를 의미했고 암묵적으로 ‘루저’는 모든 말할 권리를 없다고 합의되는 것처럼 보인다.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지어놓고 줄 세우기에 능숙한 게 대표적인 증상이 아닐까. 이와 함께 끊임없이 그 줄에서 내가 몇 번째에 있는지 끊임없이 숫자를 세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그 패배감은 자꾸만 다른 것들에 대해 곁눈질하면서 그로부터 나의 특별함을 찾게 채찍질하는데, 코미디인 것은 이러한 특별함은 ‘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 줄에 조금이라도 앞에 서기 위한 ‘스펙’으로 이용하고자 하려는 점이다. ‘한국만 그런 거 아니야’라고 말하면 적극 동의한다. 어느 곳이나 중심과 주변은 위계지어지는 편이 속편하다. 다른 말로 하면 통치하기가 편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통치라는 개념에는 ‘나’ 스스로 순응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한창 이 강박증에 시달릴 때, 만나게 된 것이 발터 베냐민의 텍스트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베냐민의 텍스트를 접했을 때, 진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나약한 메시아’라든가 ‘메시아가 들어올 작은 문’, ‘판타스마고리아’나 ‘자본주의라는 꿈’, 그리고 ‘깨어나기’와 같은 말들에 매혹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목구멍에 들러붙은 가시처럼 끊임없이 나를 쿡쿡 찔러댔다. “예술의 정치화”를 보았을 때는 ‘이게 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이런 뜻인가?’하는 날도 왔다. YB의 ‘밝은 별’인 베이시스트 박태희를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YB의 팬이었고 연예인을 알고 있다는 약간의 우월감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YB의 베이시스트가 아닌 ‘밝은 별’로서 활동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베냐민의 단어들을, 혹은 베냐민의 개념을 ‘밝은 별’ 속에서 보았던 것 같다.
‘밝은 별’은 YB에서 별명이기도 한데, 동시에 ‘음악일기’라는 다른 이름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음악일기로 활동하는 YB의 밝은 별은 유명 밴드 베이시스트가 아닌 기획자나 프로듀서처럼 활동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우리들의 음악일기”라는 무대를 만드는데, 여기에서 총연출을 담당한다. 이 무대는 콘서트라고 하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사운드나 연출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음악을 오랫동안 해왔던 아티스트들이지만 거의 처음 무대에 서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실적인 여건으로 무대의 인프라를 비롯하여 꾸미는데 한계가 있다.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작은 연극과 같은 무대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아티스트들도 종종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제 막 무대에 선, 텅 빈 스케치북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무대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열망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고 진심이었다.
프랑스 정신분석가인 라캉은 무대를 거울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거울 앞에서 ‘나’는 ‘나’가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는 것처럼, 무대는 이러한 거울과 같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라캉이 말하는 ‘응시’란 이러한 환상적인 시선에 다름 아닌다. 그 수와는 상관없이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보여진다라는 감각은 결국 ‘나’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은 내 환상이니 거짓말이라는 걸까? 비록 환상이고 나의 상상력일지 모르지만 라캉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이다. 환상이지만, 우리는 그 환상에 기대어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르게 되는 순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나’외에 다름 아니지만, 동시에 그것은 ‘나’가 아닌 ‘나’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무대가 타자와 갖는 역설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무대 밖 타자들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캉은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윤리를 전개하는 엠마누엘 레비나스에 반대한다.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언젠가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레비나스와는 다르게, 라캉에게 타자는 ‘나’이면서 ‘비-나’인 알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캉은 타자에 대한 윤리를 오이디푸스로 정리한다. 국카스텐의 노래 중에 “오이디푸스”라는 노래가 있는데, 거기에는 라캉의 타자에 대한 사유를 꿰뚫는 말이 나온다. 타자는 바로 “정답을 맞춰버린 나”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라캉에게 있어서 타자에 대한 윤리는 남을 이해하자는 것이 아닌, 타자를 다시 생각하는 ‘반복’에 있다.
마치 영화가 진짜가 아닌 줄 알면서 몰입을 했다가 그것이 끝이 나면, 거짓이라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화를 보러가는 것에 더 가깝다. 이러한 맥락에서 라캉을 따라서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최종적인 실패’를 말한다. 타자를 맞추는 것에 최종적으로 실패를 해야만, 타자에 대한 사유가 다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젝이 칸트의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라는 말 대신, 타자를 ‘사물’로서 대할 것을 말한 이유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타자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것은 ‘나’인 동시에 ‘비-나’인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콘서트에서 “여러분들이 주인공입니다!”라고 말하는 뮤지션들의 코멘트는 개인의 의도야 어쨌든 분명한 진실이다. 지난 7월, 18회를 맞이한 “우리들의 음악일기”의 취지는 분명했다. 무대를 욕망하는 것은 겉보기에 뮤지션들이지만, 마찬가지로 관객도 무대를 욕망하고 있으며, 이 시선에 대한 관객의 응답이 없다면 무대는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뮤지션이 뮤지션일 수 있는 이유는 ‘지금-여기’ 온 관객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작은 무대에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 누군가는 의구심을 품었을 수도 있다. 그때 총연출이자 게스트였던 ‘밝은 별’ 그리고 ‘음악일기’는 관객들이 모였기에 오늘 무대에 서는 뮤지션들은 모두 성공한 뮤지션들이며, 따라서 오늘 여기 온 관객들은 성공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이라고 답을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아스달 연대기>라는 판타지 드라마를 좋아한다. 여러 설정들 중 하나가 ‘폭포의 심판’이다. 어떤 사람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거대한 폭포에 떨어뜨려 산다면, 그 말은 진실이고 신의 선택을 받았음을 인정받는 일종의 마녀사냥이다. 주인공인 ‘은섬’은 이 폭포의 심판을 선고받고 폭포로 추락한다. 죽을 위기의 순간 그는 구조되는데, 그를 구한 이들은 은섬이 아무 이유 없이 구해줬던 한 부족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후 “신의 재림”이 된 은섬이 이 사실을 밝히면서 자신은 아무런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에 대하여, “이런 세상에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 목숨을 걸어준다는 것, 또한 세상 누가 도왔든 폭포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라고 마을 장로가 대답한다.
장로의 대답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겨냥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 도움의 손길이 다가올 때, 우리는 당장 “무슨 저의”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런 시대”란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쟤는 이만큼 해줘야지”로 나타나는 철저한 등가교환의 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라캉과 지젝을 따라간다면, 인간은 등가교환으로 거래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대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이 무대는 어떤 값이 측정되지 않는다. 그저 무대와 객석을 오가는 각기 소란스럽고 각자 다른 소리들로 가득한 시선들이 오갈 뿐이고 그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무대라는 중심과 그것을 둘러싼 관객석의 위계는 무의미해진다. 무대는 관객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관객석은 무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철학적으로 조금 어렵게 말하면 “중심은 언제나 탈중심화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나’는 무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든 발견된다. 무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타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어두운 관객석에 있다.
라캉에게 있어서 사랑도 이러한 무대와 다르지 않다. 사랑이란 결국 ‘나’가 없는 타자의 자리에서 ‘나’를 찾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5일, 80주년이었던 광복절인 동시에 태평양 전쟁이 끝난 날이기도 했다. 빛을 다시 찾은 날 직후, 한국의 역사가 혼란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을 생각한다면 ‘광복’이라는 말은 조금은 이상하면서도 슬프게 다가온다. 세계사에서 한국은 항상 주변부의 역사였다. 특히 1905년,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의 보호령이 되었을 때부터 한국전쟁의 시기는 너무나 어두웠던 시대였다. 그래서 중심에 대한 열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YB공연이 우리들의 음악일기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우리들의 음악일기를 통해서 YB공연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걸까?”라는 질문 등이 의미없다고 말할 뿐이다. 한국은 이미 무대에 섰다. 다만 그토록 원하던 그 무대에 섰는데, 이 무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어디에 내 시선을 던져야만 하는지를 고민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봐야 하지 않을까.
무대와 객석 혹은 구경꾼의 이분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반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주변을 향한 욕망은 언제나 옳다. 그리고 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인데, 무대는 시선의 엇갈림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무대는 오직 무대를 보러 온 ‘나’들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 즉 무대 위 사람과 그 무대를 보러 온 사람 모두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다. 마치 <아스달 연대기>의 폭포에서 누군가를 대가 없이 구한 것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행위로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내가 그 공연의 자리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위대한 여정의 시작일 수도 있지만, 결국 발견한 것은 무대가 완성되는 조건이었다. 우리는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슬로베니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야? 그 나라 잘 살아?”라는 질문이 잘못되지는 않았다. 물론 슬로베니아는 한국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산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우리’가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직접적인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 허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