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詩, 바쁜 사회의 쉼표
- 배태건
- 32
- 07-17
요즘 지하철 역사나 버스 정류소에서 문득 시를 만날 때가 있다. 바쁜 출근길, 어깨를 움츠린 채 앞만 보고
이동하다가 그 짧은 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근길 행인들은 낯설어하거나 슬쩍 올려다보는 것으로 생각 없이 지나칠 때가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쉼 없이 달려왔다.
신뢰를 좀먹는 정치와 언론의 행태는 여전히 쟁취와 경쟁을 부추기고
사회 구성원 사이의 적절한 논의조차 실종되어 가고 있다. 경쟁과 성취, 효율, 세 불리기는 속도를 우선시했고,
결과만 중시되는 구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자연히 감정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메마르고 날선 결과만이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는 쉼표처럼 존재한다.
문장 속 쉼표가 호흡을 고르게 하듯, 시는 일상을 재조정하는 호흡이 되어준다.
짧지만 진하고, 조용하지만 크게 다가오는 시는 우리 삶에 가장 느린 속도로, 그러나 가장 멀리, 깊이 가 닿게 한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아픔이나 슬픔에서도 꿋꿋하게 다시 살아날 힘을 준다.
시는 침묵하지 않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시인들이 그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꺼내 놓았다.
SNS에 올라온 수많은 시인 독자들의 시편들은 전 국민의 애도와 분노,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침묵이 지배하던 시간 속에서도 시는 용기 있게 말했고, 동시에 조용히 아픔을 품고 풀었다.
슬픔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함께 앓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존재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문장으로 많은 이들을 시로 쏠리게했다.
교과서에 실리고, 병원 벽에 걸리며, 연인들의 다이어리에까지 담겼다. 뒤늦게 한글을 깨우친 칠곡 할머니들의 시는 어떤가.
그 감동이야기를 직접 담아낸 에세이「칠곡 가시나들」의 뮤지컬「오지게 재밌게 나이 듦」,「80이 너머도 어무이가 조타」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디지털 시대에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SNS를 통해 짧고 간결한 언어로 대중과 소통하며 더 넓은 독자층을 만난다.
“인스타 시인”이라 불리는 젊은 창작자들이 전하는 문장들은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위트 있게, 때로는 날카롭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하상옥 시인의 한 줄 시는 SNS를 넘어 광고와 노래로 확장되어 이제 문단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대중 가까이에서 숨 쉬고 있다.
시는 우리 사회 어디에서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서울의 골목길, 부산의 지하철 역사, 전주의 한옥마을, 여러 지자체의 도심 속 공원을 비롯하여 도시의 곳곳에 시가 새겨져 있다.
‘읽는 거리’,‘머무는 거리’로 탈바꿈한 이 공간들은 시를 통해 도시의 감성을 확장시킨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시는 이제 시민의 삶에 말을 걸고, 그 삶을 조용히 껴안는다.
시는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들처럼, 가을 산에 번지는 단풍의 물색처럼 세상을 들썩거리게 한다.
우리가 지쳐 외롭고 쓸쓸할 때나 넘치는 감정으로 흔들릴 때도 고요히 그 중심으로 가닿게 하는 추의 역할을 해준다.
시를 읽고 쓰는 마음도 그렇다. 나와 내 곁의 어둡고 힘든 구석들을 잠시 쉬게 하고 따뜻하게 다독여주기 위해서다.
시어 하나, 시 구절 하나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앞으로도 그렇게 시는 존재할 것이다.
긴장되고 바쁜 삶의 문장 중간중간 필요한 건 잠시 쉬어갈 쉼표다.
조용히 쉬는 동안 걸어온 시간과 남은 시간을 다시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이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문장 끝에 찍을 완벽한 마침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숨이 머문 그 자리
잠시 멈춘다는 건
끝맺음을 남겨두고
다음을 잇는 매듭처럼
배태건 시「쉼표」중에서 KIC 배태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