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글로벌 기자단 소식
크라이스트처치의 초록 쉼표, 그리고 한국의 도시 숲 이야기...아이들이 걸으며 배우는 도시의 품격
- 박춘태
- 22
- 07-24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걷는 발 밑에 바스락이는 잔가지, 하늘을 가르며 오가는 새들의 그림자.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홀스웰(Halswell)이라는 지역에선, 이런 일상이 자연스럽다.
이곳 아이들의 방학 과제는 놀랍게도 ‘자연을 걷는 것’이다. 트랙을 돌며 자신만의 돌을 채색해 숨기고, 부시(bush) 트랙을 따라 정상에 올라 리틀턴 항구(Whakaraupō)의 풍경을 감상한다. 숲과 도시를 오가며 마을 곳곳을 발로 걸어 기록하고, 잔디밭에 누워 별을 헤아리는 이들의 여유 속엔 이곳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의 아이들은 방학이면 학원으로 향한다. 국어, 수학, 영어, 코딩까지 쉴 틈 없이 배우기 위해 이동하고, 그 틈에 친구를 만나도 ‘스터디 카페’라는 공간에서 이어진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 속에서 “오늘은 숲길을 걸어보자”는 말은 낯설기까지 하다. 비교적 여유로운 시골이나 자연휴양림을 제외하면, 도심에서는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적고, 무엇보다 시간의 여백이 부족하다.
크라이스트처치의 홀스웰(Halswell)지역은 주거지를 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개념을 체감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나무다리를 건너고, 물가에 사는 새들을 관찰하며 작은 연못의 생태계를 이해한다. “타운의 어떤 골목은 아직 못 가봤으니 이번 방학에 탐험해 보자”는 이야기는 이곳 아이들의 흔한 대화 중 하나다.
그 중심에는 ‘녹색 연결망’이 있다. 공원과 공원 사이를 잇는 자전거 도로, 도보 산책로, 작은 다리, 습지, 숲길이 도시를 그물처럼 잇고 있다. ‘Country Palms’ 같은 이름을 가진 지역은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도시에도 많은 공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휴식’에 집중되어 있다. 벤치에 앉아 쉬는 공간으로서의 공원은 있지만, ‘놀이’와 ‘탐험’을 위한 연결망은 부족하다. 자전거길이 단절되기 일쑤고, 자동차 도로가 중심에 있어 아이들끼리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산책로는 산에나 있고, 일상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 아이들은 ‘자연을 찾는 여행’이 아니라, ‘자연 속에 있는 삶’을 산다.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도 나무 아래 그림자가 드리운 길이 있고, 어디서든 들꽃과 만나며 길을 잃는 일이 곧 모험이 된다. 공원에서 지도를 그려보며 입구가 몇 개인지 찾고, 고무장화를 신고 걷는 모습은 배움의 또 다른 형태다. 심지어 놀이는 ‘미션’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숨겨놓은 돌을 찾아보자”, “마을에서 제일 많은 공원을 찾아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선물해보자.” 이곳에서는 놀이가 곧 탐구이고, 탐구가 곧 삶의 방식이다.
물론, 한국에도 변화의 바람은 있다.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걷고 싶은 길을 만들고, 자전거 도로를 확대하며, ‘어린이 보호구역’을 넘어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마을’을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어진다. 특히 서울 성미산 마을이나 전주 승암마을, 광주 양림동 등에서는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의 녹지를 보존하고, 아이들의 생태 체험 공간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도시는 자동차 중심, 성인 중심, 속도 중심이다. 느리게 걷고, 자연을 느끼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지 풍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삶을 구성하는 철학이다.
뉴질랜드의 한 마을은 말한다. “길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자연은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도시는 빠름을 선택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친다. 구체적인 길의 안내와 함께, 무엇을 보며 걸을 것인지, 어떻게 탐험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늘 또 다른 놀이터와, 또 다른 숲이 기다린다.
단순한 공원 조성이나 구조물의 설치가 아닌, 사람과 자연이 연결되는 방식, 그것은 단지 도시계획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재구성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초록빛 마을을 걷다 보면, 문득 한국에서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던 시간, 비탈길을 달리던 자전거, 골목마다 숨어 있던 비밀 기지.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억이 필요하다. 도시가 줄 수 있는 선물은 높은 빌딩도, 화려한 조형물도 필요하지만, 바로 ‘걸을 수 있는 길’과 ‘숨 쉴 수 있는 여백’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자연과 함께, 사람과 함께.
이곳 아이들의 방학 과제는 놀랍게도 ‘자연을 걷는 것’이다. 트랙을 돌며 자신만의 돌을 채색해 숨기고, 부시(bush) 트랙을 따라 정상에 올라 리틀턴 항구(Whakaraupō)의 풍경을 감상한다. 숲과 도시를 오가며 마을 곳곳을 발로 걸어 기록하고, 잔디밭에 누워 별을 헤아리는 이들의 여유 속엔 이곳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의 아이들은 방학이면 학원으로 향한다. 국어, 수학, 영어, 코딩까지 쉴 틈 없이 배우기 위해 이동하고, 그 틈에 친구를 만나도 ‘스터디 카페’라는 공간에서 이어진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 속에서 “오늘은 숲길을 걸어보자”는 말은 낯설기까지 하다. 비교적 여유로운 시골이나 자연휴양림을 제외하면, 도심에서는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적고, 무엇보다 시간의 여백이 부족하다.
크라이스트처치의 홀스웰(Halswell)지역은 주거지를 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개념을 체감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나무다리를 건너고, 물가에 사는 새들을 관찰하며 작은 연못의 생태계를 이해한다. “타운의 어떤 골목은 아직 못 가봤으니 이번 방학에 탐험해 보자”는 이야기는 이곳 아이들의 흔한 대화 중 하나다.
그 중심에는 ‘녹색 연결망’이 있다. 공원과 공원 사이를 잇는 자전거 도로, 도보 산책로, 작은 다리, 습지, 숲길이 도시를 그물처럼 잇고 있다. ‘Country Palms’ 같은 이름을 가진 지역은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도시에도 많은 공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휴식’에 집중되어 있다. 벤치에 앉아 쉬는 공간으로서의 공원은 있지만, ‘놀이’와 ‘탐험’을 위한 연결망은 부족하다. 자전거길이 단절되기 일쑤고, 자동차 도로가 중심에 있어 아이들끼리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산책로는 산에나 있고, 일상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 아이들은 ‘자연을 찾는 여행’이 아니라, ‘자연 속에 있는 삶’을 산다.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도 나무 아래 그림자가 드리운 길이 있고, 어디서든 들꽃과 만나며 길을 잃는 일이 곧 모험이 된다. 공원에서 지도를 그려보며 입구가 몇 개인지 찾고, 고무장화를 신고 걷는 모습은 배움의 또 다른 형태다. 심지어 놀이는 ‘미션’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숨겨놓은 돌을 찾아보자”, “마을에서 제일 많은 공원을 찾아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선물해보자.” 이곳에서는 놀이가 곧 탐구이고, 탐구가 곧 삶의 방식이다.
물론, 한국에도 변화의 바람은 있다.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걷고 싶은 길을 만들고, 자전거 도로를 확대하며, ‘어린이 보호구역’을 넘어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마을’을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어진다. 특히 서울 성미산 마을이나 전주 승암마을, 광주 양림동 등에서는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의 녹지를 보존하고, 아이들의 생태 체험 공간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도시는 자동차 중심, 성인 중심, 속도 중심이다. 느리게 걷고, 자연을 느끼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지 풍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삶을 구성하는 철학이다.
뉴질랜드의 한 마을은 말한다. “길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자연은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도시는 빠름을 선택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친다. 구체적인 길의 안내와 함께, 무엇을 보며 걸을 것인지, 어떻게 탐험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늘 또 다른 놀이터와, 또 다른 숲이 기다린다.
단순한 공원 조성이나 구조물의 설치가 아닌, 사람과 자연이 연결되는 방식, 그것은 단지 도시계획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재구성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초록빛 마을을 걷다 보면, 문득 한국에서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던 시간, 비탈길을 달리던 자전거, 골목마다 숨어 있던 비밀 기지.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억이 필요하다. 도시가 줄 수 있는 선물은 높은 빌딩도, 화려한 조형물도 필요하지만, 바로 ‘걸을 수 있는 길’과 ‘숨 쉴 수 있는 여백’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자연과 함께, 사람과 함께.
출처 : 글로벌 비즈 뉴스(http://www.gbnews.kr)
뉴질랜드 박춘태 기자